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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희의 뒷북
대학 시절,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은 술자리에 모였다. 하릴없는 청춘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이따금 카페에, 혹은 당구장에 가기도 했다. 노래방에 가는 날도 간혹 있었다. 하지만 매번 모임의 끝은 술집이었다. 무엇보다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곳에는 늘 고개를 끄덕여주는 사람이 있었다. 학교 얘기, 연예인 얘기, 그리고 이성 얘기…. 나처럼 술 한 잔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도 이야기의 세계에선 시민권이 있었다. 각자 만 원씩만 내면 배부르게 안주까지 먹을 수 있었다. 만 원의 행복 앞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했다. 그땐 몰랐다. 눈으로 보면서도 알지 못했다. 누군가는 오후 일과 내내 카페나 게임방에서 시간을 보낸 반면, 누군가는 알바를 마친 후에야 술자리에 ..
3년 전 대전의 고향 집 앞에서 나는 비명을 질렀다. “엄마!” 스물여덟 살 먹은 총각에겐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지만 그땐 어쩔 수가 없었다. 다급했으니까. 그때 나는 가족과 부여의 친척집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트렁크에는 사과, 한과, 김치 같은 할머니의 애정 어린 선물이 가득했다. 덕분에 어머니가 주차를 맡은 사이 아버지와 나는 짐을 옮기느라 바빴다. 양손 가득 짐을 들어도 차와 주차장 사이를 여러 차례 오가야 했다. 마침내 모든 짐이 쌓였고, 성질 급한 나는 상자 하나와 봉투 몇 개를 함께 손에든 채 아파트 현관의 자동문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문이 작동하지 않았다. ‘에이씨’, ‘뭐야’ 같은 추임새를 넣으며 닫힌 문 사이로 손가락을 넣었다. 과거 그런 식으로 문을 열었던 기억이 있어서였다..
외할머니를 생각하면 늘 롯데샌드가 함께 떠오른다. 입대 후 첫 휴가날, 부모님은 자식 고기 먹인다며 장 보러 가시고 집에는 나와 할머니 둘 뿐이었다. 간만에 네이트온을 켜고 친구들과의 대화에 정신이 팔린 나였다. 할머니가 사라질 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거동도 불편하신 분이 어디 가셨나, 집밖으로 나가 한참을 찾아 헤맸다. 어디에도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치매, 납치, 노인 증발 같은 부정적인 단어가 뇌리를 스쳤다. 그렇게 얼마나 헤맸을까. 아파트 정문 쪽에서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안도감과 원망이 뒤섞여 다리에 힘이 풀렸다. 도대체 어디 갔었냐며 나는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런 나를 그녀는 굽은 등으로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입을 열었다. "너 이거 좋아하지?" 그의 손에는 롯데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