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희의 뒷북

"엄마야!" 외치는 소리, 지금은 들리는가 - <균열일터>, 데이비드 와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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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야!" 외치는 소리, 지금은 들리는가 - <균열일터>, 데이비드 와일

moony1217 2019. 4. 22. 01:20

  3년 전 대전의 고향 집 앞에서 나는 비명을 질렀다. “엄마!” 스물여덟 살 먹은 총각에겐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지만 그땐 어쩔 수가 없었다. 다급했으니까. 그때 나는 가족과 부여의 친척집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트렁크에는 사과, 한과, 김치 같은 할머니의 애정 어린 선물이 가득했다. 덕분에 어머니가 주차를 맡은 사이 아버지와 나는 짐을 옮기느라 바빴다. 양손 가득 짐을 들어도 차와 주차장 사이를 여러 차례 오가야 했다. 마침내 모든 짐이 쌓였고, 성질 급한 나는 상자 하나와 봉투 몇 개를 함께 손에든 채 아파트 현관의 자동문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문이 작동하지 않았다. ‘에이씨’, ‘뭐야같은 추임새를 넣으며 닫힌 문 사이로 손가락을 넣었다. 과거 그런 식으로 문을 열었던 기억이 있어서였다. 문틈이 슬쩍 벌어졌고 됐다싶어서 더 깊게 손가락을 넣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문이 입을 다물었다. 손가락이 끼인 나는 생각지 못한 통증에 소리를 내질렀다. 뒤에서 쿠당탕하며 뭔가를 내리치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였다. 내 손가락이 끼인 문틈으로 그는 급하게 양손을 집어넣었다. 위기에 몰리면 누구나 무언가를 외치기 마련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외침을 들어주는 이가 곁에 있을 때 돌파구가 생긴다는 것을 그때 새삼 알았다.

  그해 5, 구의역에서 한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을 때 내 마음이 복잡했던 것은 그래서였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사고 당시 노동자 김군은 혼자서 안전문을 수리하고 있었다. 지하철이 다가오는 줄, 알 수나 있었을까. 혹 위험을 인지했더라도, 혼자서 빠져나오기엔 시간이 촉박했을는지 모른다. 다급한 목소리를 누군가 들어줬더라면 어땠을까. 사고 이후 정부는 21조 수칙을 의무화했다. 수칙을 지키지 않는 기업에는 책임을 묻겠다고 발표했다. 왜 사람이 죽고 나서야 대책을 세우는지, 황망함을 느끼는 동시에 나는 이제는 잘 지켜지겠거니하며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왜 어떤 노동자는 비명을 들어줄 사람조차 갖지 못하는가. 데이비드 와일 브랜다이스대 교수의 저서 <균열일터>는 이런 의문에 한 가지 답을 제공하는 책이다.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대개 기업을 손가락질한다. 기업이 사람 목숨을 우습게 알았다며, 혹은 기업가가 나쁜 본성을 지녔다면서. 와일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안전조치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추가적인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악의를 갖고 노동자를 괴롭히는 기업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기업은 노동자 개인에게 별 관심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이윤을 최대화하는 데에만 집중할 뿐.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오직 하나,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다.

 

데이비드 와일 브랜다이스대 교수의 저서 <균열일터>. 와일 교수는 오바마 행정부 당시 노동부 산하 임금 및 근로시간분과에서 종신행정관으로 일했다. 직접 촬영.

 

  사실, 노동자들은 지금보다는 과거에 훨씬 더 많이 다치거나 죽었다. 작업 중 휴식 시간이 잘 보장되지 않은 데다, 안전설비의 수준도 열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기업은 노동자의 권리와 복지에 꽤 많은 신경을 썼다. 그게 기업으로서도 이익이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을 비롯한 이른바 선진국의 핵심 산업은 제조업이었다. 산업의 특성상 제조업에선 노동자의 숙련도가 기업의 이윤을 결정한다. 숙련된 노동자가 떠나면 기업으로선 큰 손실을 보게 된다는 뜻이다. 게다가 기업에는 제조 과정을 통제할 유인도 존재했다. 자칫 품질관리에 문제가 생기면 브랜드 명성에 누가 되기 때문이다. 복지나 안전설비에 조금 돈을 쓰더라도 기업이 노동자와 직접 계약을 맺은 배경이다.

  상황이 반전된 건 1980년대, 금융시장이 성장하면서다. 기업은 노동자를 넘어, 주주의 눈치도 보기 시작했다. 투자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이미 기업을 운영하는 자금의 상당 부분이 주주의 투자에서 비롯하는 상황이었다. 임금 인상을 비롯한 노동자의 요구에 주주들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노동을 둘러싼 기업의 계산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더해졌다. 과거와 달리 기업은 직접 관리가 아닌 방식으로도 품질관리를 할 수 있게 됐다. 예컨대 S전자는 고객 서비스를 모니터링하고, 고객이 선호하는 사항과 불만을 제기하는 요소를 꼼꼼히 체크한다. 조사된 내용은 S사가 고객 대응 매뉴얼을 만드는 기초자료로 쓰인다. 그리고 매뉴얼은 S사로부터 S사와 계약한 각종 업체에 전달된다. 매뉴얼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하청업체는 S사로부터 계약 해지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그 결과 오늘날 대기업이 직접 노동계약을 맺는 경우는 극히 줄어들었다. 이윤 창출과 직접 연관되는 핵심 업무에는 정규직을 두지만, 그렇지 않은 업종은 비정규직을 주로 고용한다. 예컨대 청소부는 청소업체와의 계약으로, 조리사는 요리서비스업체와의 계약으로 외부에서 데려오는 것이다. 이제 노동자들은 대기업을 위해 일할 때조차 하청업체를 통해 일하거나 파견을 가게 되고, 때때로 독립계약자로서 기업과 만난다. 와일 교수의 책 제목이기도 한 균열일터는 이렇게 찢겨진 일터의 풍경을 가리키는 용어다.

  물론 오늘도 노동자는 여전히 노동자라 불린다.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의 처지는 각기 다르다. 예컨대 정규직은 회사에 임금 인상이나 승진을 요구하고, 복지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목소리를 내도 기업이 이들을 함부로 자를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비정규직은 무언가를 좀처럼 요구하지 못한다. 자칫 해고를 통보받을까 그들은 두려워 한다. 안전 설비 개선이라고 해서 말을 꺼내볼 수나 있을까. 위험의 외주화로 요약되는 하청업체의 처지도 다르지 않다. 정규직이라 해도 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불안정하다. 안전조치를 요구해 원청의 비용이 증가할 경우 다음번 입찰경쟁에서 소속집단이 밀려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들은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사고가 발생한 사실조차 숨기곤 한다. 원청의 비정규직과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안전사고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배경이다.

 

지난해 12월 충남태안화력발전소에서 운송설비점검을 하다가 사망한 고 김용균씨의 유품.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이 현장조사를 통해 확보한 김씨의 유품의 목록엔 종류별 컵라면이 들어 있었다. 2016년 구의역에서 사망한 노동자 김군의 경우와 다르지 않았다. 출처 : 경향신문

  손가락을 빼낸 후, 집에 들어오며 아버지와 나는 이런 대화를 나눴다. “저 문 당장 고쳐야겠네. 위험하다.” 사람이 목소리를 내는 건 위기에 빠진 순간만이 아니다. 당장 위해입지 않더라도, 위기가 목도하기 이전에 예방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세상에는 있다. 문제는 목소리의 불평등이다. 두려움 없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설령 목소리를 낸다 해도, 들어줄 이 하나 없는 사람도 있다. 지난해 12,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는 어땠을까. 그 역시 나처럼, “엄마야라는 소리를 외치지 않았을까. 그 이전에, 사고가 날지 모른다며 21조 업무수칙을 지켜달라고, 혹은 안전설비를 보강해달라고 외치는 소리, 있지 않았나. 계속 외쳐도 무언가 바뀌지 않는다면, 이제는 접근방법을 달리해야 할 때가 아닐까.

  와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기본적인 근로기준을 보장하고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수호하기 위해 마련된 규제법안은 엉뚱한 방향에 초점을 맞추느라 이러한 변화를 간과하고 있다. 특히 노동관계 법들은 대개 20세기 전반부에 제정되어 단순하고 직접적인 고용-피고용 관계만 따지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은 변하고, 기업은 적응한다. 그렇다면 기업이 적응할 환경은 누가 만드는가. 목소리 이전에, 소리를 낼 수 있는 여건부터, 소리를 듣게 만들 방법부터 고민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엄마야!" 외치는 소리, 지금은 들리는가. 어떻게 해야 들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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