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희의 뒷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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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에 담지 못한 이야기 - 뒷면

날카로운 '불온서적'의 추억

moony1217 2019. 3. 22. 02:05

 

  옛날 사진을 들여다 볼 때면 한번씩 놀라게 되는 순간이 온다. ‘아니, 이때는 뭐가 이렇게 촌스러웠지?’ 혹은, ‘와 정말 하나도 안 변했네.’ 전자가 시간의 간격에서 나온 차이 때문이라면, 후자는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유지되는 동일성에서 비롯한다. 대개 더 놀라운 쪽은 전자다.
  내게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2008년과 그 이후의 몇 년이 그런 옛날 사진이다. 가슴에 콕 들어박혀 한 장의 스냅샷으로 남은 기억. 그때 나는 대학교 2학년이었고, 군대를 가기 전이었다. 지금도 고등학생은 ‘대학만 가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변에서 주입받는 존재 아닌가. 어린 시절의 나 역시 그랬다. 대학생활은 처음으로 내가 세상을 처음 제눈으로 보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시작점이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두 개의 흉기를 손에 쥐고 있었다. 명박산성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불온서적이었다. 저항적인 언론인을 탄압하는 강경책이나 KBS에 자기 홍보 시간을 만드는 문화통치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내 피부에 와닿았던 사건은 저 둘이었다. 명박산성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려던 MB가 쌓아올린 것이었다. 광우병 보도에 분노한 국민이 대대적으로 저항하자 그는 경찰을 시켜 광화문 광장에 차벽을 쳤다. 그 벽을 오르려던 꽤 많은 이가 벽 위에 있던 경찰의 방패에 맞아서 떨어졌다. 피 흘리던 노인과 경찰에 쫓겨 도망치던 임산부들의 모습은 내 마음까지 강하게 두드렸다. 잘못 사용되는 공권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그때 처음 알았다.

  산성이 국민의 목소리를 가로막고 몸을 쳐낸 물리적 장벽이었다면 불온서적은 심리적 장벽이었다. 나는 2009년 4월에 입대했는데, 6월 초 자대에 배치됨과 동시에 불온서적의 존재를 알았다. 물론 군대라는 조직은 특성상 아무 물건이나 가져갈 수 없다. 어떤 물건이건 병영에 들여오려면 입국심사처럼 헌병의 검토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불온서적은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모로 봐도 테러의 수단일 수 없는 종이뭉치였지만 특정 종류의 책은 입국이 거부됐다. '장병의 건전한 생각을 가로막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안그래도 MB 정부의 태도에 삐딱선을 타고 있던 나다. 그런 방식의 통제가 얼마나 정당한지 나는 의문이었다. 비판하는 이의 목소리를 수용하고 의회 내외에서 토론해 정책으로 만들어가는 게 정부와 여당의 역할이라고 나는 배웠다. 일개 병사가 글 몇 줄 읽는다고 무너져버릴 정권이라면 그 정권, 얼마나 취약한 것인가. 게다가 통제는 현실적이지도 않았다. 불온서적 23권의 목록엔 <삼성 공화국의 게릴라들>이라는 제목의 책이 올라와 있었다. 그러면서 군대 내 서점에서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판매했다. 나 몰래 관물함을 털어간 기무사의 행동도 황당했다. 그들은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뺏어가면서도, 바로 옆자리에 꽂힌 마르크스의 <자본>은 들고 가지 않았다. 펭귄 클래식에서 나온 영어 원서라서 내버려 뒀던 것일까.

 

 

  사상과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말을 그때처럼 생생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검열이 자행되던 시대, 선배들이 얼마나 두려움에 떨며 글을 읽고 써왔을지도 짐작해볼 수 있었다. 교육학에서는 어린 시절 겪은 일이 나이가 들어서도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때의 경험 이후로 나는 조금씩 리버럴리스트가 됐다. 그렇게 형성된 정체성은 지금까지도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2019년 3월 18일, 21일자 '오래 전 이날'을 쓰라며 모바일팀 선배로부터 과제를 받았다. '오래 전 이날'은 뉴스가 나가는 날과 같은 일자의 10년, 20년, 30년 등 10년 단위 과거 신문보도를 지금의 시점에서 조명하고 재서술하는 코너다. 1989년의 신문은 한자로 가득했고 1999년 신문은 일요일이었던 관계로 발행되지 않았다. 그렇게 부득불 2009년 신문을 화면에 띄웠다. 운명처럼 '불온서적'이란 글자가 눈에 박혔다. 국방부가 불온서적 지정에 헌법소원을 낸 군법무관들을 비롯, 특수사관 후보생들을 대상으로 훈련을 강화한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뭐 이런 일이?'라며 나의 어린 동기들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들 곁에서 나도, 별 촌스러운 일도 다 있었노라며 미소를 지었다. 2008년의 광장도 그랬다. 차벽에 꽃스티커를 붙이고 경찰에게 소리지르던 2016년의 광장에서 나는 경찰에 쫓겨 기타와 드럼을 들고 바쁘게 뛰었던 과거를 생각했다. 오늘의 공화국은 그 시절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가.

  그러면서 문득,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를 떠올려 본다. '혼이 비정상'이라며 과거를 바로 가르쳐야 한다고 역성냈던 그 사람. 국정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시도에 찬동했던 이들과 저자 목록에 올라갔던 이름들. 그리고 마치 그것이 논쟁거리나 되는 것처럼 기사화했던 몇몇 언론. 오늘은 과거로부터 정말 멀리 왔는가. 시간이 가져온 차이를 생각하다가, 문득 나는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에 깜짝 놀란다.

 

  아래는 3월 20일에 작성한 기사링크.

http://h2.khan.co.kr/2019032100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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